소소한 애호가적 생활

러브 오브 시베리아

Zigeuner 2003. 7. 21.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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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비(非)헐리웃 영화를 만나면, 숨통이 트이는 것만 같다. 빠르지 않고, 지나친 보여주기에 열중하지 않는 여유로움이 있어서일까. “러브 오브 시베리아”도 바로 그런 영화이다.

이 영화는 깐느 영화제 개막작이며, 총제작비 580억원이 들어간, 니키타 미할코프 감독의 조국 러시아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첫화면을 장식하는 러시아의 전경은 아름답고도 장엄하며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러시아 전통을 알려주는 듯한 장면들은 따뜻하고 정겹게 그려져 있다. 영화속 주인공 제인 역시 이런 모습에 반한 듯 "I love your country"를 연발한다. 영화의 원제는 '시베리아의 이발사'로 모차르트의 '세빌리아의 이발사'를 패러디했으며, 극중 미국인 발명가가 고안한 벌목기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 작품을 보면서 나는 여러모로 러시아와 서구사회에 대한 감독의 생각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제인 캘러핸과 발명가로 대표되는 서구인들(구체적으로 미국인)은 속셈이 있고, 다소 이기적으로 묘사되는 반면, 러시아 인물들은 즉흥적이고, 낭만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래들로프 장군은 감성적이고 천진난만하며 어리숙하고, 딱딱할 것만 같은 사관생도들은 모차르트 오페라를 공연할만큼 예술적인 감성이 풍부하다. 또 민중들은 용서의 날을 그린 장면들에서 잘 드러나듯, 흥겨운 축제를 즐기며 순정한 뚝심을 지닌 사람들로 묘사되어 있다.

그렇다면, 미국인 여자 제인과 순수한 러시아 사관생도 톨스토이의 사랑과 이별은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까? 둘의 사랑은 아름답긴 하지만, 톨스토이의 삶을 중심으로 생각해보면 제인과의 만남은 재앙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는 그녀와의 사랑때문에 전도유망한 사관생도의 위치에서 시베리아의 유배자로 전락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제인이 유배중인 톨스토이를 만나러 가는 장면이 벌목기 '시베리아의 이발사'가 시베리아의 침엽수를 거침없이 베어내는 을씨년스러운 장면과 계속해서 교차될 때, 웃음을 잃은 톨스토이와 황량해질 시베리아의 숲을 같이 떠올리게 되면서 감독이 서구 자본주의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오히려 결론은 희망적인 쪽에 가깝다. 제인이 톨스토이에게 전하지 못한채 낳아 기른 아들 앤드루는 서구 자본주의를 동경하는 러시아의 미래를 상징한다. 모차르트를 모욕하는 상사와 오랜 신경전을 벌인 끝에 결국 승리한 후 방독면을 벗어 던지며 들판을 가로지르는 앤드루의 모습은, 20년전 자신을 찾아왔다 못만나고 돌아가는 제인의 모습을 보기위해 숲속을 질주하는 톨스토이의 모습과 교차편집되면서 (앤드루와 톨스토이의 연기는 한 배우가 일인 이역을 했다.)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를 향해 달리는 것처럼 보이며 이는 감독이 러시아와 미국(혹은 서구 자본주의 국가)의 관계에 대해 희망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어쩜 그런 면은 이 작품의 제작을 프랑스 등등의 나라들이 함께 맡고 있는 점에서도 엿볼수 있을 것이다.

2시간 40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이 전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으며, 장엄한 화면과 조화된 배우들의 연기로 인해 여운이 오래 남는 영화이다. 특히 톨스토이와 앤드루의 일인 이역을 소화한 올렉 멘시코프의 연기는 정말 놀라웠다. '헐리웃에 닥터 지바고가 있다면 러시아엔 러브 오브 시베리아가 있다'라는 한 평론가의 20자평이 매우 걸맞은 평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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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글은 3년전 (헉! 벌써!) 레포트로 작성한 영화감상문이다.
이제보니 어떻게든 학구적으로 쓰느라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이 영화는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되는 영화' 라고 할수있는데,
이유는 원래는 이 '감동적인' 영화를 전혀 볼 생각이 없었기 때문.
왜 볼생각이 없었는고 하니, 배우가 전혀 끌리지않아서...
(나는 줄리아 오먼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이 영화를 본 이후, 출연배우를 기준삼아 영화를 고르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지키진 않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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