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어머니는 미역국 두 냄비를 끓였다

Zigeuner 2019. 11. 23.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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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을 넘게 살았어도 동네친구 하나 없는 나와 달리 엄마에겐 친한 동네친구가 몇 있다. 그 중 비교적 최근에 생긴 관계가 캣맘 동지 양양이다. 서로 다른 시간대에 길냥이 밥을 챙겨주다가 어느날 마주쳤는데 엄마가 아파트 단지 안에서 밥을 준지 오래됐다는 걸 알자 양양은 아파트 단지 밖을 돌보기로 했단다. 양양이 주는 사료를 냥이들이 더 좋아하는 거 같아서 브랜드를 물었더니, 이름이 기억이 안난다던 양양은 우리집으로 사료를 배달시켰다. 송장에 “착한이모”라고 적혀 있었다.

양양은 우리와 한 동에 산다. 한국말을 아주 능숙하게 하는 중국인이다. 남편도 한국어를 잘 한다고. 장사를 한다고 들었다. 울 신여사님을 만났을 무렵에 이미 배가 상당히 불러있었는데 예정일이 이번달이라고 했다. 출산을 도우려고 친정 어머니가 한국에 들어오셨는데 친정 어머니는 한국어를 못했다.

어느날 꽤 늦은 저녁시간에 방문밖에서 울 식구들이 웅성대는 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현관문을 바라보며 계속 “누구세요”를 외치고 있었다.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는데, 누구냐는 물음엔 묵묵부답이다. 엄마가 인터폰 화면을 켜니 검은 패딩을 입은 중년여성분이 보인다.

- 양양 엄만가분데?? 문 열어보자

엄마의 말에 문을 여니 눈이 동그란 양양 어머님이 속사포같이 중국어를 뱉어냈다. 식구들은 날 보네. 중국어 배운다고 낑낑대던 세월이 있어서 그른가. 그런데 들리는 소리는 “야오스””다 디엔화” 밖에 없었고. 고것만으로도 충분하긴 했다.

- 열쇠 없어서 집에 못들어가고 계신가봐. 양양한테 전화 좀 해봐

엄마는 급하게 18층 새댁의 전화번호를 찾았다. 양양이 딸을 낳고 병원에 입원중인 것도 알게 되었다. 비밀번호를 물은 양양 엄마는 번호가 너무 길다며 곤란해했다. 우린 메모지와 펜을 내주었다. 전화를 끊은 양양 엄마는 뭐라뭐라 길게 말했다. 말이 무지 빠른데 그 와중에 “마오”라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아, 입원한 딸 대신 냥이 밥 챙기셨나보다. 근데 현관문 비번을 모르셨나보다. 그렇게 이해했다.

- 야, 중국사람들은 산후 조리로 뭐 먹을까. 양양 내일 퇴원한다는데.
- 글쎄, 땅이 넓어서 지방마다 다를 거 같은데. 그냥 한국에선 미역국 먹는다고 알려주면서 한 솥 끓여 갖다주면 어떨까.
- 그럴까. 못 먹으면 다른 사람이라도 먹겠지. 잡채도 좀 해서 주자.

그런 연유로 우리집 부엌에선 간밤에 소고기가 가득 들어간 미역국이 보글보글 끓었다.

그런데 커다란 미역국 냄비가 두 개.

왜 두 냄비나?

하나는 고봉밥과 함께 오늘 아침 식탁에 올랐던 내 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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