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애호가적 생활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

Zigeuner 2015. 5. 7. 15:09

이전 글에 《대화》를 통해 두분의 대담을 읽은 바 있어 내용이 익숙하다고 적었는데, 오늘 나란히 놓고 보니 아예 같은 내용이다. 다른 점이라면 법정스님 열반 후 최인호 작가가 병환 중에도 길상사로 문상을 다녀온 소회가 '들어가는 글'과 '나오는 글'에 나뉘어 적혀 있다는 점이다. 


같은 내용인 책을 다시 읽어서 별로였냐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다. 이런 기회로 새롭게 읽고 새롭게 밑줄을 그어 마음에 새기기도 하였으니까. 예전에 밑줄을 치지 않은 곳에 새삼 밑줄을 그은 부분을 견주어보니 내가 지금 무엇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고민하는지 알게되기도 한다. 책을 읽고서 인상적인 대목이라며 P에게 이야기했던 부분들을 적어둔다.


최인호

그런데 스님, 기독교에서 용서한다는 말도 하잖아요. 진짜 용서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저는 요즘 많은 고민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면, 진정한 용서라는 개념에 대해서 스님께서는 어떻게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요?


법정

용서라는 말에는 어딘지 수직적인 냄새가 나요. 비슷비슷한 허물을 지니고 살아가는 중생끼리 누가 누구를 용서할 수 있겠어요. 용서라기보다는 서로가 감싸 주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관용 정신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개인적인 갈등이나 집단적인 대립도 이 관용 정신에 의해서 극복될 수 있습니다. 관용은 모성적인 사랑의 극치라고도 할 수 있어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최 선생께서는 용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최인호

기독교에는 '주님의 기도'라는 가장 기본적인 기도가 있는데, 그중의 핵심이 '우리에게 잘못한 일을 우리가 용서하듯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라는 구절입니다. 우리가 남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느님도 우리를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것을 오랫동안 생각했고 이를 바탕으로 《영혼의 새벽》이라는 소설도 썼지만 사실은 굉장히 어려운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그건 너무 힘든 일이라고 봅니다.

...(중략)...

저는 '내가 미워하고 용서할 수 없는 저 사람이 하느님으로부터는 용서받은 존재이다'라는 것을 발견하는 일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용서라고 봅니다. ...(중략)... 그런데 여기에는 '나같은 사람도 하느님으로부터 용서받을 수 있는 존재로구나'라고 깨닫는 일이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그게 바로 기독교에서 얘기하는 회개이겠지요. 뉘우침이 전제되었을 때 '나 같은 사람도 용서받았고 내가 미워하고 증오하는 저 사람도 용서받은 존재이니 서로 미워해서는 안되겠구나'라고 깨달을 수 있는 겁니다. 이때 우리에게 용서의 기쁨이 다가올 수 있죠. 이건 가능한 얘기입니다.


최고의 용기는 용서를 구하는 것 - 베풂과 용서, 종교

157~162쪽


P가 듣고서 성경에서 '용서하다'라는 해석되는 부분의 희랍어 단어를 찾아주었다.


법정

... 소수를 위해서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는데, 그건 행복일 수가 없어요. 행복에는 윤리가 전제되어야 해요. 저 혼자만 잘산다고 해서, 저만 맑고 투명한 시간을 누린다고 해서 행복이 될 수 없거든요. 남들이야 어찌되었든 아랑곳하지 않는 행복이란 진짜가 아니에요.


어지러울수록 깨어있으라 - 시대정신에 대하여

113쪽


P는 물었다. '행복의 전제가 윤리라면, 윤리의 전제는 무엇인가요?'


지난주에 들렀던 강남 교보의 베스트셀러 진열대에 이 책이 에세이부분 1위에 놓인 것을 보았다. 사람들은 이 책을 읽으며 어느 부분에 밑줄을 그었을까. 법정과 최인호가 지식인과 지성인에 대해 대화하며, 아는 데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부분을 그들도 읽었을텐데, 이 책을 읽고 밑줄을 긋고 있을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좋을까.


법정

참된 지식이란 사랑을 동반한 지혜겠지요. 반면 죽은 지식이란 메마른 이론이며 공허한 사변이고요.


최인호

네, 스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참된 지식을 얻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요.


법정

우리에게 필요한 건 냉철한 머리가 아니라 따뜻한 가슴입니다. 따뜻한 가슴으로 이웃에게 끝없는 관심을 갖고, 그들의 일을 거들고 보살피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박학한 지식보다 훨씬 소중하지요. 하나의 개체인 나 자신이 전체인 우주로 확대될 수 있어요. 그리고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냉철한 머리보다는 따뜻한 가슴으로 - 참 지식과 죽은 지식

135~136쪽


제목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는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의 금언으로, '나오는 글'에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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