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애호가적 생활

연극 <이것은 사랑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사랑이야기

Zigeuner 2024. 3. 25. 11:21

 

지난 주, 관극메이트와 연극을 한 편 보고 왔습니다. 

<이것은 사랑이야기가 아니다> 라는 제목이고, 캐스팅 보드를 보니 여배우 세 명이 무대에 오르는 극이네요.

처음에는 배우분들이 다 생소하네, 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김시영 배우는 구면이었어요. 

<앨리스 인 베드>와 <보존과학자>에서 뵈었던 배우네요. :) 

 

시놉시스를 읽어볼까요.

2000년에 태어난 재은과 윤경.
2007년에 만난 두 사람은 단짝 친구에서 연인으로, 
연인에서 가족으로 살아가며
2099년까지의 시간을 함께 통과한다.
오래된 동네 빵집 앞에서, 하나뿐인 딸 재윤의 생일 초 앞에서,
40도가 넘는 열대야의 밤을 지나며
두 여성이 서로의 삶에 미치는 영향과 삶의 궤적을 쫓는다.

 

재은과 윤경은 퀴어 부부에요. 그들의 딸 재윤(부부 이름에서 한 글자씩 땄겠죠)은 입양된 딸입니다.

딸은 헤테로이고, 성장한 후 이성 남자친구와 결혼해 아이를 낳게 키웁니다.

세 등장인물이 모두 여성이지만 또 상당히 다른 사람들이죠. 

이들은 비슷하지만 다른 인간이므로 

서로 사랑하기도 서로 미워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결국엔 서로 이해하는 것 같아요. 

아마도 이것이 삶의 과정이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극을 보게 되었습니다. 

 

2000년부터 2099년까지의 시간은 선형적으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2022년이었다가, 2060년이었다가, 2007년이었다가...

왜 이렇게 시간을 배치했을까. 

과거의 어떤 선택이 미래의 어떤 선택으로 연결되기도 하고,

미래의 어떤 선택은 과거의 어떤 마음을 잊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헤어진 지 오래되었어도, 너무 익숙하고 잘 알아는 관계로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딸이 있기 때문인가 싶기도 했구요. 

 

2000년대 대중가요가 극중에 많이 흐릅니다.

배우들이 커튼콜 때 춤을 추기도 했고요. 

윤경역의 김시영 배우는 왜 그렇게 춤을 잘 추시죠? ㅎㅎ 아이돌 하셔도 될 듯. 

마음을 이어주는 음악의 힘도 느낄 수 있는 극이었던 것 같습니다. 

 

음성해설이나 한글자막해설이 들어간다는 안내가 있었는데,

제가 본 회차는 음성해설 회차였어요. 

무대에 오르신 4분 중 검은 옷을 입은 분이 그날 음성해설을 담당하신 분이었습니다.

지문을 하나하나 읽어주신 것 같은데,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작가의 글을 보니 "아무도 죽지 않는 이야기일 것"이라는 문장을 초고 구상 시 제일 먼저 떠올렸다고 하더라고요.

이 연극은 시종일관 밝은 편이고 따뜻하게 마무리되지만, 

약자 혹은 소수자였던 그들의 삶이 편했을리 없겠죠. 

하지만 실패하고 좌절하고 힘든 와중에도 포기하지 않고 포용하려는 마음, 그 노력이

무대 안팎으로 잘 전달되는 듯한 연극이었습니다. :)

 

이게 결국 사랑이고, 이 연극은 결국 사랑이야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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