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애호가적 생활

노안이 온다는 것

Zigeuner 2019. 9. 9.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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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라섹을 언제 했더라. 십년은 됐으려나. 여튼 그때 삼십대였고, 지금 라섹을 해서 시력이 좋아지더라도 사십대가 되면 금세 노안이 온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 얘길 들을 때만 해도 먼 시간 이야기 같았는데 말이다.

지난 달쯤이었나. T가 그랬던가. (이 무슨 기억력 난조의 어법이란 말인지.) 손바닥을 들고 눈으로 점점 가까이 당겨보라고 어디에서 초점이 안 맞는지 보라고. 또다시 기억력 난조여서 정확한 거리가 생각이 안나는데, 그걸로 대강 노안을 진단한다나 뭐 그랬다. 그때도 이미 초점거리가 꽤나 눈에서 멀었던 것 같은데.

하지만 당시만 해도 어질어질할 정도는 아니었다. 초점 맞추는 것 때문에 눈알에 버퍼링이 생길 지경은 아니었단 말이다. 그런데 요즘 꽤 자주 눈알이 힘들어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것이 노안 때문인지, 아니면 아이패드로 그림그리느라 전자기기에 고개를 쳐박는 시간이 급격히 늘어서(원래도 많았는데 그보다 더)인지를 모르겠다. 아마도 둘 다 일 거라 생각한다. 전자기기의 잦은 사용이 빠른 노안을 불렀을 거야, 분명. 엉엉.

오늘 라면을 먹는데, 라면 한 젓가락을 들고 면치기를 하려고 고개를 그릇 가까이 대는 순간 그릇안의 라면에 아무리해도 초점이 안 맞는 것이다. 라면 그릇이 아찔하게 보이는 그 순간, 아 이제 빠져나올 수 없는 노안이로구나, 싶어 울적하였다.

“엄마 나 노안이 온 게 확실한 가봐. 라면 그릇 안에 라면이 잘 안 보이네.”

엄마가 사십 넘은 딸을 얼마나 하찮은 눈으로 보셨는지는 더 이상 묘사하지 않겠음.

내 몸에서 유일하게 수술이라는 것을 받은 부위가 눈인데, 그 수술의 유효기간이 이제 슬슬 끝인가 싶어 아쉽기도 하다. 아니지, 아직 멀리 있는 건 제법 보이니 유효기간은 아직 남았다. 안경을 쓰고 산 세월이 20년이 넘는데, 라섹 하고 꽤나 편히 살았다. 전자기기 중독자라 상당히 눈을 혹사시키는 편인데, 초점 버퍼링이 생긴 지금부터라도 초록을 보면서 좀 눈에 휴식을 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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