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분 열풍인지는 모르겠지만 또래 사이에, 혹은 블로그 서평에 마스다 미리라는 작가의 만화가 자주 언급됐다.
그렇게 좋은가? 궁금은 했지만, 왠지 그림이 성의없어 보여서 (하하!) 보지는 않았는데,
우연한 기회에 만화가 아니라 에세이로 마스다 미리의 작품에 처음 발을 들이게 되었다.
최초의 한입 - 마스다 미리 지음, 이연희 옮김/라미엔느 |
우선은 아이디어가 좋은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추억 속 음식에 대한 이야기라.
읽으면서는 좀 실망했는데, 그건 내용에 대한 실망은 아니었고 글의 스타일에 대한 실망이었다.
아마도 만화를 먼저 봤다면 괜찮았겠지. 에세이스트라기 보다는 만화가이니까.
문장이나 문단이 엉성해서, 문장 자체를 읽는 기쁨은 없는 편이었다.
작가 혼자 삼천포에 빠졌다 돌아오기도 해서 정신없는 글도 있다. (ㅎㅎ)
그런데, 엉성함에 적응되어 갈 때쯤 내가 빙긋 웃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 마스마 미리의 매력이란 꾸밈없는 진솔함이구나.
왠지 부끄러워할만한 일화나, 놓치기 쉬운 자잘한 느낌들을 잘 포착해서 솔직하게 적었다.
계속해서 '그래 이 느낌, 뭔지 알겠어'라고 속삭이며 읽게 된다.
만화는 아직 읽지 않았지만, 역시 비슷한 느낌일거라 짐작한다.
결국 공감을 사는 좋은 글이란 세심한 관찰과 진솔함에서 시작되는 것임이 분명하다.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탄산은 라무네보다 강하게 톡톡거렸다. 코 주변까지 탄산이 튀어 올라와 간지러운 느낌이 났다.
나는 이처럼 강한 자극의 콜라 맛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다가 결국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매워!"
어린 나에게 '자극=매운 것'이었다. 친구 어머니가 웃음을 터뜨렸다.
54쪽, '코카콜라' 중
나는 뜯어 쓴느 캡슐 형태의 작은 액상 프림을 넣었다. 하나하나의 작업이 어른스럽게 느껴져 기분이 좋았다. 설탕 시럽을 잔뜩 넣었기 때문에 하나도 쓰지 않고 달달한 맛이 났지만, 어른과 똑같은 행동을 하는 내 모습에 가슴이 크게 두근거렸다. 『빨강머리 앤』에서 앤이 친구 다이애나를 오후의 차 모임에 초대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때 앤의 기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앤이 어른들의 방식대로 친구와 차를 마시기를 동경했듯이 나 역시 커피를 마시는 어른의 분위기를 여전히 사랑한다.
63쪽, '아이스커피' 중
그런 상품명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는 어쩐지 시시한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시시하지만 그 시시함이 마음에 들었던 나는 매일 질리지도 않고, "오후엔 역시 홍차지~" 라고 말하며 학교 정원에서 오후의 홍차를 마셨다.
커다란 사이즈가 100엔(발매 당시에는 날씬한 캔이었지만 내가 처음 마신 것은 큰사이즈였다).
떫지 않고 딱 좋은 달달함.
[...]
나는 지갑 속에 오후의 홍차를 사기 위한 돈, 100엔만 찔러 넣고 학교에 갈 때도 종종 있었다. 전차나 버스는 정기권으로 해결되기 때문에 현금은 100엔으로 충분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대학생이나 되어서 나는 왜 오후의 홍차 값만 지갑에 넣고 학교에 다녔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
장래를 생각할 때마다 불안감에 휩싸였던 그 시절.
서양회화과를 전공해서 제대로 취직이나 할 수 있을가?
그런 두려움이 가슴을 짓누르는 불안 속에서도 천천히 시간을 들여 한 장의 그림을 완성해야 하는 유화 수업. 초조함과 느긋함 사이에서 마시는 오후의 홍차는 바로 청춘의 맛, 그 자체였다.
67-69쪽, '오후의 홍차' 중
* 가장 마음에 드는 에피소드였다.
비행기 안에서 음료 서비스를 받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승무원이 상냥하게 웃는 얼굴로 음료수를 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공짜라는 점이 어쩐지 득을 본 기분이라서 그렇다. 나는 비행기에 탈 때마다 항상 긴장한다. 언제, 어느 타이밍에 좌석 테이블을 내려야 할지 고민이 되기 때문이다. 테이블을 지나치게 빨리 내리면 음료만 오매불망 기다리는 것 같아 부끄럽다. 하지만 승무원이 다가오기 직전까지 테이블을 내려놓지 않으면 비행기를 처음 타 보는 사람처럼 어리숙해 보일까봐 걱정이 된다. 물론 내 고민이 쓸 데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76쪽, '차이' 중
*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