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애호가적 생활

무위당 장일순 선생 20주기

Zigeuner 2014. 5. 16. 11:20

5-6월호 녹색평론은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20주기를 맞아 그를 추억하고 기리는 글이 머릿기사로 실려있다.

고전어 수업에서 장일순 선생의 이름과 한살림운동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지만 이분이 어떤 분인지 잘 알지 못하다가, 대담에 언급된 그분의 면면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분의 운동 방향은 '공생'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보듬어 안는' 과정이다.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고 '뒤엎고' '몰아내는' 투쟁 일변도의 운동에 한계를 느끼고 전환하게 된 것이다.


하. 도대체 이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다음은 녹색평론에 소개된 일화이다. (부분 발췌)

황도근 (...) 상지대로 오자마자 학교가 소용돌이예요. 김문기 이사장 축출운동이죠.(...) 학교 일이 복잡해져서 어느 날 무위당 선생님을 뵈러 갔어요. (...) 저한테 그러시는 거예요. "너 김문기하고 싸운다며? 너 조심해라." (웃음) "네 동료들도 조심해라." 그 때는 못 알아들었어요.

   그 이후에 김문기 축출 투쟁이 벌어지다 보니까, 대자보도 붙여야 되고, 상황히 엄호하게 됐어요. 우린 오천만원짜리 어음도 썼어요. 서로 배신하지 못하게 하려고요. 하지만 교수협의회에서 너 배신하면 안되니까 오천만원 어음을 쓰라고 하는 것을 보고, 이게 뭐하는 짓들인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겠어요?


  (...)


  그래서 저는 선배하고 싸웠죠. 아무리 싸워도 양심으로 해야지 그런식으로 하면 우리가 뭐냐. 그리고 그 얘기를 무위당 선생님한테 쪼르르 달려가서 일러바쳤죠.

  "그래, 열받냐? 그럼 본관에 네가 대자보를 하나 붙일 수 있겠냐?" 그러시는 거예요. 그게 90년도예요. 그래서 밤새도록 고민해서 썼어요. 김문기도 나쁘다, 그런데 교협도 어쩌구저쩌구, 두 페이지를 썼어요. 눈이 시뻘개 가지고 밤새 썼죠. 다음 날 아침 건너가서 조반을 드시는데 보여드렸어요. 그걸 읽으시더니, 쭉-


이철수 쭉 찢으셨지? (웃음)


황도근 그래요. 그때 배웠죠. 너만 잘났냐? 비판을 하려면 그냥 한쪽에 확실히 서라, 이거죠. (웃음) 그때 충격이 컸어요. 양비론이라는 게 굉장히 위험하다는 걸 가르쳐주셨어요. 그런데 또 이상한 일이 벌어졌는데, 한 3개월이 지난 뒤였어요. 교수협의회 대표들이 무위당 선생님을 만나게 해달라는 거예요. 김문기가 무위당 선생님에게 계속 찾아간 것을 알고 어떻게든 이걸 조정을 좀 해달라고 부탁드리기 위해서였어요. 그래서 대표들하고 무위당 선생님이 만났는데, 선생님이 딱 한마디 하셨어요. "김문기한테 석고대죄할 수 있냐?" (웃음) 나는 옆에 있다가 너무 놀랐어요. 오천만원 어음까지 쓴 사람들에게 대놓고 석고대죄를 하라니? 이 사람들 눈빛이 싹 변하더군요. 저도 안절부절이었죠. 누가 알아듣겠어요, 그 말씀을? 이 사람들이 나가서 무위당이 김문기 편이 됐다고 소문을 퍼뜨렸어요.


김용우 바로 그렇게 소문이 났죠.


황도근 당시 제가 시내에 나와서 술을 마시잖아요. 그럼 뒤에서 무위당 욕하는 소리 다 들렸어요. 회색분자, 개량주의자라고요. 하기는 당시에는 저 자신도 사실 이해하지 못했어요.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거 엄청난 용기 없이는 못할 말씀이에요. 사실 무위당의 행적을 보면 그런 식으로 운동하는 사람들의 문제점에 대해 계속 지적하셨어요. 교만, 그걸 늘 지적하신 것 같아요. 그런데 나중에 김문기가 잡혀가게 되었을 때, 자기가 믿을 데는 무위당밖에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에요. 그래서 찾아가서 샌생님께 학교 좀 맡아달라고 말했어요. 무위당 선생님이 뭐라 하셨는가 하면, "좋다, 학교에 있는 당신 친인척 먼저 다 내보내라" 그러셨어요.


녹색평론의 대담에 많은 일화가 소개되어 있는데 이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내가 '양비론'에 대해 고민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다툼은 편싸움을 벗어나기 어렵다. 편싸움은 서로 잘났다는 싸움이다. 결론이 쉽게 나지 않는다. 무위당의 방법은 급진론자에게는 복장터지는 일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무위당은 굳이 가르자면 '옮음' '진리' 즉 '절대'의 편이었겠다. 굉장히 종교적인 이야기로 들릴 수 있겠다.


무위당은 불교에서 카톨릭으로 개종했으며, 동학(특히 해월 최시형 선생)과 노자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녹색평론을 읽은 후 '좁쌀 한 알'과 '나락 한알 속의 우주'를 연달아 읽었는데 그들을 거푸 인용하셨다. 나락 한알에도 우주가 담겨있다. 모든 생명(혹은 사물까지)은 하나의 우주이자, 진리의 응결체이다. 우리는 그 진리를 섬기며 모시며 살아야한다. 아주 단순하게 도식화해서 이렇게 이해했다. 물론 내 이해는 무지 얕은 수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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