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애호가적 생활

누군가 내게 책을 읽어준 기억

Zigeuner 2014. 3. 20.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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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omnivoracious.com/2014/03/national-reading-month-kate-dicamillo-on-the-power-of-stories.html


케이트 디카밀로가 어린 시절을 회고하는 글을 읽었다. (요새 모 드라마에 나와서 베스트셀러1위를 기록 중인 모 도서의 작가다.) 엄마가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자기와 형제에게 읽어주던 저녁의 일화인데, 그 풍경이 너무나 아름답고 따스하다. 개가 몸을 눕히고 있다가 웃음소리가 터질 때마다 고개를 들었다는 묘사에서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저자는 함께 소리내어 읽던 그 경험이 가족을 묶어주는 끈이 되었다고 회상하며, 사람들에게 사랑하는 이의 옆에 앉아 책을 펼치고 소리내어 읽으라고 주문하고 있다.


애석하게도 나는 부모님이 내게 책을 읽어준 기억이 없다. 이건 그런 사실이 없다는 게 아니라, 내 기억이 없다는 뜻이다. 내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아빠가 사온 동화책에 딸린 구연 테이프를 늘어지도록 들었던 일 뿐이다. 그 기억도 무척 소중하지만, 아무래도 카세트와의 기억이다보니, 연대감까지는 생기지 않는 것 같다. (카세트랑 연대감이 생겨서 뭐하겠냐는...)


이야기와 연결된 연대감으로 치면 단연 친할머니다. 할머니는 옛날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다. 외할머니와는 그런 기억이 없어서인지, 외할머니보다는 친할머니를 한결 애틋하게 기억한다. (물론 외할머니는 지금도 살아계시므로 예전을 기억할 필요가 없긴 하지만.) 친할머니가 들려주신 이야기들은 동화테이프에 없는 이야기들이 많아서 더 신기하고 재미있게 들었다. 나중에 글자를 깨우치고 세계명작동화를 읽게 되었을 때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들이 일본 전래 동화라는 사실을 알았다. 모모타로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던 것이다. 그 깨달음을 시작으로 할머니에 대한 걸 하나씩 알게되었던 것 같다. 할머니는 일본에서 태어났고, 시집오고 나서도 한국어가 서툴어 고생을 했다는 이야기, 숫자를 셀 때 할머니가 중얼거리는 말들이 일본어였다는 사실 등등을 새삼 알게 되었다.


할머니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본적이 없고 (있지도 않겠거니와) 고향이 정확히 어딘지 듣지 못했지만, 오사카로 여행 갔을 때 잠깐 이 고장 어딘가에서 할머니가 태어나고 자랐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벌써 18년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는 언제든 내 기억속에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되살아났다. 디카밀로의 저 글을 읽고보니 그 뿌리는 할머니가 들려주신 이야기들이었다.


문학은 구전으로 시작되었다. 어쩌면 눈이 아니라, 입으로, 소리로 전달되었을 때 더 강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 이야기의 본성일지 모르겠다. 그래서 요새 책 읽어주는 팟캐스트들이 그렇게 흥하나. 내가 또 동화 구연 하나는 끝장나게 잘 할 수 있는데 (ㅋㅋ) 나도 때가 되면 누군가에게 꼭 책을 읽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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