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애호가적 생활

꼼꼼한 슈타이들씨와의 만남

Zigeuner 2013. 7. 9. 13:26

T와 대림미술관에서 슈타이들 전시회를 보고 옴 (20130707)


처음엔 그저 휙휙 보면서 3층까지 올라갔다가 도슨트 설명이 있다고 해서 다시 2층부터 시작했는데 

안 들었으면 후회했을 뻔! 도슨트 설명은 좋은 것이었습니다. 

(11시 도슨트 설명은 사람도 많지 않고 헐렁해서 좋았음)


2층에는 출판사 건물인 슈타이들빌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모든 사진은 아날로그로 촬영되었다. 슈타이들도, 사진작가 코토 볼로포도 디지털을 믿지 않고 아날로그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사진 중에 요리사와 음식 사진을 보고, "옹~ 식당도 있엉~ 일하기 좋겠다 우앙 굳!" 이랬는데, 

그게 다 함께 작업하는 작가들이 일하는 동안 슈타이들빌을 벗어나는 게 싫어서 만들어놓은 거란 설명을 듣고는 

"으앙 징한 슈타이들이다~!"로 180도 바뀌었다.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갈 수 없는 슈타이들빌. 그래서 '잠수함'이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코포 볼로포가 슈타이들을 주제로 만든 콜라주에는 시계가 많이 등장하는데, 

매일 아침 4시부터 밤9시까지 주말도 없이 일하는 슈타이들을 표현한 것이다.

슈타이들은 본래 사진을 전공했으나 브레송의 작품을 보고 일찌감치 '이길은 내길이 아닌개벼~'하고 출판에 투신했다. 

그 때가 이미 10대 후반. 주제 파악은 중요한 것입니다. 암요. 나도 주제파악을 잘 하고 살아야 할텐데... 읭~?


슈타이들은 일할 때 늘 흰 가운을 입었다. 

그는 전시회를 설명하는 도슨트들도 그 상징적인 흰 가운을 입길 바랐고, 심지어는 포켓에 꼽을 펜의 종류마저 지정해 주었다고.

정말 꼼꼼한 사람이다!!!!


출판업이라는 특성상 많은 작가들과 협업할 수 밖에 없으므로, 

전시를 통해 슈타이들 뿐 아니라 다른 작가들의 이야기도 접할 수 있어 좋았다.

협업하는 모든 작가들이 슈타이들빌로 찾아와서 일하지만, 유일하게 슈타이들이 찾아가는 작가가 있으니 

그는 바로 사진가 로버트 프랭크.

이유는 로버트 프랭크가 겁나 늙어서! ㅋㅋㅋㅋㅋ;;; 노인을 공경할 줄 아는 슈타이들 씨다.

교정을 거치는 출판 필름을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프랭크 할아부지는 너무 계조가 살아있는 사진이 싫었던 걸꺼야- 콘트라스트 빵!


귄터 그라스의 책도 이뻐서 한참 봄. 자신이 그림을 그리지 않을 때는 오직 글을 쓸 때 뿐이라고 했다는 귄터 그라스.

귄터 그라스가 자신의 책 '그림 형제의 단어'의 표지와 내부 그림을 직접 그렸는데 

그 B컷들이 걸린 액자가 가장 사진빨이 잘 받는 곳이라고 한다.


정말 그런가?



다이아니타 싱의 책이 전시된 공간에서는 다이아니타 싱의 마음씀씀이에 감탄하게 되었다.

사진전 등 문화 생활을 경험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 책과, 이동식 책장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작은 상자에 아코디언처럼 접혀지게 만들어놓은 책자도 인상적이었다. 

한번 직접 만들어보고 싶을 만큼! (하지만 프린터가 중요하니까;; 힘들꺼양 으엉.)

일하면서 봤는데 이런 바인딩 방식을 레포렐로 leporello 바인딩이라고 한다고.


칼라거펠트 공간은 패스... 전시된 책 the Little Black Jacket 속 송혜교는 왜 혼자 컨셉이 그리 튑니까?

내 맘속의 쵝오는 틸다 스윈튼...네 이건 물론 팬심때문이죠잉. 이 언닌 왜 뭘 해도 멋있어?


요새 디자인과 관련된 서적을 많이 보고 있어서 (일때문이다...) 폰트 섹션을 흥미롭게 둘러보았다. 

나는 딱히 선호하는 폰트가 없지만, 많은 디자이너들이 바스커빌체와 가라몬드체를 좋아하더라. 

슈타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글씨체도 바스커빌체라고. 


에드 루쉐와 공동 작업한 존 업다이크의 소설 '온더로드'를 전시해 놓은 공간에서는

그 꼼꼼한 엠보싱과 사진 처리 과정에도 감탄했지만, 자간까지 일일히 신경써서 만들었다는 조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가독성이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고심했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4층에 마련된 판화가 짐 다인과의 협업한 전시공간은 중앙에 설치된 Hot Dream 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1주일에 한권씩 일년동안 만든 총 52권의 각기 다른 책들.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아놓은 방식도 좋았어요.

제일 좋아하는 건 40번째 책이라고.


책은 그림자 마저 이쁘구나




요새는 디지털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수작업, 수공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모양이던데
(잡지 CA 6월호에서 집중기사가 있음)
무한 카피가 가능한 디지털이 아니라 시간을 들이고 정성을 들이는 아날로그적인 작업이 창의력을 더 자극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컴퓨터도 싫고 이메일도 싫어서 아직도 팩스를 사용한다는 (ㅋㅋㅋ) 슈타이들의 전시를 살펴보니
아날로그적 방식에 대한 그의 애정을 담뿍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책에 대한 애정도.

이런 사람이 내 바로 옆에서 일하면, 난 질려했겠지? 크하하하하하-



맘에 들어서 책갈피도 구입!


(앞으로 전시회에 가면 꼭 도슨트 설명을 듣자! 아니면 음성 안내라도 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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