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애호가적 생활

Still there

Zigeuner 2013. 5. 29. 12:19

still there

시리즈의 처음이었던 '비포 선라이즈'를 보았을 때 사실 별 감흥이 없었다. 당시 어린 마음에 '에이 이건 영화잖아. 저런 로맨스는 영화속에나 있는거지'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다만 두 사람이 내내 주고받던 대화에는 감탄을 했었다. 저렇게 첫 만남에도 지루해하지 않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니! 두번째 '비포 선셋'을 보고선 조금 공감을 했다. 기차 속 만남이라는 로맨스는 흔치 않아도, 누구나 다시 만나고 싶은 옛사랑 한 명쯤은 있기 마련이니까. 세번째 '비포 미드나잇'을 보고, 이 이야기는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후를 얘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면에서 많은 기혼자들의 감상평처럼 '비포 미드나잇'은 로맨스의 환상을 벗어버리고 현실을 드러낸 다큐에 많이 가까워졌다. (물론 엔딩은 현실적이지 않다고들 합디다. 난 기혼자가 아니라 모름 ㅋ) 

두 사람은 선라이즈와 선셋사이에 9년은 서로 그리워하며 보냈고, 선셋과 미드나잇 사이 9년은 함께 보냈다. 이상과 꿈을 얘기하던 두 사람의 대화는 보다 현실적인 문제에 매여있었다. 제시는 떨어진 아들 생각에 여념이 없는 배불뚝이 아저씨가 되어 있고, 셀린느는 육아에 지친 히스테리컬한 아줌마가 되어 있다. 둘이 호텔방에서 벌이는 다툼은 그 과정이 전혀 논리적이지 않은 넘겨짚기와 회피하기로 이어지기 때문에 정말 사실적이었다. (셀린느의 히스테리가 내 생각 이상이긴 했지만) 셀린느의 대사를 들으며 이 나라나 저 나라나 여자가 육아와 직업을 동시에 책임지기란 힘든 거로군!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문득 두 사람이 이런걸로 다투고 앉았다니, 신기했다. 9년이란 이런 세월이구나. 함께 한 세월의 무게가 두 사람을 저렇게 바꿔놓았구나. 호텔에서 두 사람이 크게 다투긴 했지만 호텔로 가는 도중의 대화에서, 두 사람이 앞으로 함께 할 50여년을 미리 떠올려본다거나 상대의 죽음을 떠올릴 때, 서로가 서로를 따로 떨어뜨려 생각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나란히 앉아 지는 해를 바라봤던 것처럼 나란히 중년 이후 저물어 가는 인생도 함께 지켜볼 것 같은 느낌. 여전히 다투고 얼렁뚱땅 화해하는 일은 반복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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