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지 책장에서 무심코 꺼내 읽음.
이 책의 저자, 요로 다케시는 동경대 의대 교수를 역임했으며 다치바나 다카시와 함께 일본의 지성으로 일컬어지는 인물이라고 한다. 추천사를 적은 전여옥에 따르면 어머니도 대단하신 분인듯. 이 책은 요로 다케시의 강연을 엮은 책이며, '바보의 벽'이라는 용어는 2003년 출간 당시보다 20년 전에 처음으로 사용했던 말이라고 한다. 그가 말하는 '바보'란 자기가 알고 싶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정보를 차단해버리는 사람으로, 작가는 분명 그런 풍토를 없애고자 글을 쓰고 열심히 강연도 다니고 있겠으나, 처음 그 말을 사용한지 거의 30년이 지난 지금, 그 풍토는 더욱 심화된 것 같아 씁슬하다.
4장 '만물유전(萬物流轉), 정보불변' 이 인상적이었다. '사람은 변하고, 정보는 변하지 않는다'가 옳은 전제인데 '사람은 변하지 않고, 정보는 변한다'로 전제가 역전되면서 삶이 부조리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작가는 사람 개개인은 독립된 개체로서 변하지 않지만 (내가 네가 될 수 없으니),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분명히 다르므로 사람은 변한다고 말한다. 반면 한번 내뱉은 말이나 기록된 정보는 그 자체는 불변으로, 다만 최신의 정보로 갱신되어 가는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예로부터 말을 조심하고 약속을 중히 여기는 풍토가 있었으나, 도시화가 진행되며 앞서 밝힌 전제가 역전되고나서는 말을 가볍게 내뱉고 약속을 가볍게 여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 정치인의 공약)
개성을 추구하는 교육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우리는 타고나길 이미 개성적인데, 왜 계속 개성적인 사람이 되라고 교육하냐는 것이다. 막상 사회에 나와보면 개성있는 사람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이것은 큰 모순이다. 자꾸 개성을 강조하다 보니 '나'와 '너'를 구분하게 되고, 아집에 갇히며, 결국은 바보가 되는 것이 아닌가. 따라서 작가는 교육은 공동체 안에서 타인을 이해하는 법 가르치기를 지향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수긍이 되는 바다.
의대 교수답게 뇌를 분석하여 설명한 부분이 많지만 적당히 눈여겨 보는 정도로 훑었다. (사실 어려운 언급이 있지는 않다.) '인생이란 무거운 짐을 지고 절벽을 오르는 것과 같다'는 말은 저자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말을 조금 바꾼 문장이다. 원문은 이렇다. '인간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길을 가는 것과 같다.' 저자는 문장을 손보고 절벽을 힘겹게 오를 수록 시야가 트인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했다. 절벽을 오르는 과정은 앎의 과정이고 이해의 과정이다. 단순히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이치를 생각하고 이해하여 세상에 단 하나의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는 원리주의나 근본주의에서 주창하는 바) 여러 해법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 인식이 곧 세상에 통용되는 상식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