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환 회고전에 다녀왔다.
어느새 세 시간이나! 싶을만큼 재미있었고, 한 사람의 팬질을 23년 하는 것도 대단히 역사적인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ㅋ
본인 말대로 2집 무렵 아이돌급의 인기를 누리며 책받침이며 사진들이 문구점에 팔렸다고. 나도 그중에 몇장 가지고 있돠. 푸핫.
그중 몇개 공개.
아, 공연장에 전시되어 있던 사진들은 아래.
큭. 촌스러. (클릭하면 커지긴 하지만 아이폰으로 찍은 거라 잘 안 보임)
회고전이라는 기획에 맞게 1집에서 10집 순서로 대표곡과 잘 안 알려진 곡을 적절히 섞어서 불렀다.
'나는 나일뿐' '너의 기억'을 오랜만에 들을 수 있어서 좋았던 공연이었다.
취미로 음악하시는 승환옹이 '취미'로 만드신 2곡도 꼭 정식으로 발표해주었음 하는 바람이 있다. (참고로, 가사가 유치발랄함. ㅎ)
오늘 공연장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일을 겪었기 때문인데,
이미 드팩 사이트에서 사건의 한 남자분이 까이고 있고, 나는 드팩 활동은 안하므로 굳이 거기에는 적지 않고 여기에 적을란다.
내가 예매한 자리는 2층 두번째줄 정중앙이었다.
이승환 공연은 대부분 환장하는 공연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관중이 서서 관람하는 광경이 흔하다.
단 어제 (30일) 공연에서는 2층 관객이 얌전한 편이어서 일어서는 관객이 많지 않았다. (노래도 대부분 차분했고)
문제는 맨앞줄 정중앙 아가씨가 일어서면서 시작되었다.
내 바로 앞자리였고, 단차가 심하다고는 하나 무대가 저 아래에 있는 2층인지라 그 아가씨가 일어나자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무대는 물론이고, 무대 위에 설치한 대형화면도 전혀 보이지 않았으며, 내 눈앞은 그저 아가씨 머리통과 등판 뿐이었다.
나와 내 동행 옆자리 두 좌석에 사람이 오지 않아 마침 비어있어서, 내 동행은 나보고 자리를 옮기라고 했는데,
뭐 이승환 공연을 오래본 입장에서 서서 보는 건 으레 있는 일이니 그러려니 하면서 소리만 듣고 있었다.
그순간, 내 뒤에 앉은 커플 중 남자가 "저기 좀 앉아서 보세요. 하나도 안보여요" 라고 소리치는 게 들렸다.
그러자 앞자리 아가씨가 외쿡인들이 모르겠다고 할때 하는 어깨 으쓱에 손을 휘젓는 동작을 하며
공연은 '원래 이렇게 보는 거다'라는 입모양을 보였다. 근데 그 다음곡이 차분한 곡이었는지, 아님 이승환 멘트였는지 이내 앉긴 했다.
뒤에서 커플이 구시렁거리기 시작했다.
"미친 X가 지혼자 공연 보러 왔냐" "그렇게 서서 공연 보고 싶으면 일찍 예매해서 1층 끊지" "다시 한번 일어나기만 해봐라" 등등
뒷자리 커플이 온갖 사악한 말을 늘어놓는 바람에 공연에 집중이 안됐다. 니네도 민폐라고!!! (나는 소심하니 말하진 않았고;)
다시 노래가 시작되고 조금 흥겨운 노래가 나오자 앞자리 아가씨가 여지없이 일어났다.
난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거 뭔 사단이 나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동행의 반대쪽 옆자리로 자리를 옮겼다.
아니나 다를까, 남자가 소리쳤다. "좀 앉아요" 반응이 없자 "야!" 소리 지르더니
몸을 거의 한줄 앞으로 옮기다시피 해서 서있는 아가씨 어깨를 낚아챘다.
이승환도 2층의 소동을 눈치챌 만큼 큰 소리 였다 =____________= (뭐니, 너?)
공연장 스탭이 내려와서 앞자리 아가씨한테 뭐라고 얘기하는데 앞자리 아가씨는 굉장히 꿋꿋하게 버텼고(??)
몇번 말로 실랑이를 더 하고 앞자리 아가씨 친구들도 만류하는 과정을 거쳐 아가씨가 자리에 앉았다.
분위기는 그야말로 개판5분전이었고;; 그 아가씨는 노래한곡이 끝나자 나가서는 들어오지 않았다. (다른 자리에서라도 봤길 바란다)
앞서 말한 대로 드팩에서는 남자분의 개매너가 까이고 있다. 까일만 하고 까여도 싸다.
하지만 앞자리 아가씨도 잘한 건 없다고 본다.
이승환 공연은 서서 보는 관객이 일반적이다 보니 그러려니 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게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그 아가씨도 본인이 흥이 났더래도 주위 분위기가 일어서서 보는 분위기가 아니면 앉아서 즐기는 배려를 해야 하지 않나.
앉아서도 층분히 즐길 수 있는데 말이다.
세상에 10만원에 가까운 돈을 내고 모르는 사람 등짝보기 즐거운 사람이 어디 있을까.
이승환은 본인이 팬덤을 부정하고 있긴 하지만 내가 알기론 골수팬덤이 굉장히 두터운 가수이다.
(그리고 이제 공연을 세번은 기본으로 본다는 그 골수팬덤의 등골을 빨고 있지;;;)
그 골수팬들이 공연분위기를 좌지우지하기도 한다. 휴폭등을 미리 준비해서 공연분위기를 북돋우는 등 순기능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공연을 찾는 사람들이 모두 골수팬은 아니고,
그런 사람들에게도 팬덤사이에서나 일반적인 분위기를 강제하는건 무리다.
이러나저러나 아주 간단하게 생각해서 두 사람 모두
나만 좋고 남은 방해받는 상황보다는 남도 좋고 나도 좋은 상황을 찾아야지.
앞자리 아가씨가 처음 앉아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을 때, 분위기 파악하고 앉아서 공연을 즐겼다면,
뒷자리 놈(-__-)이 좀 좋은 말로 상황을 풀었다면......
그 점이 좀 아쉬운 공연이었다.
결론, 너네 다 미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