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애호가적 생활

조심스러운 그녀의 움직임이 인상적이었던 영화 [로나의 침묵]

Zigeuner 2009. 6. 14.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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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 노출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내 눈길을 끌었던 건 그녀의 조심스러운 움직임이었다. 차분하고 정돈된 움직임, 서두르지 않고 주위를 잘 살피는 모습. 늘 익숙히 해온 동작들의 연속, 그리고 동그랗게 뜬 눈. 그녀가 이국의 땅에서 살아가기 위해 오랜시간 익혀온 몸가짐이었을지 모르겠다. 그녀는 벨기에 국적을 따기 위해 클로디와 위장결혼을 한다. 언제 감시가 닥쳐올지 모르므로, 늘 조심스럽게 행동할 수 밖에 없다. 클로디는 마약중독자로, 마약을 끊기 위해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계속 로나에게 의지하며 마약을 끊으려고 노력하는 클로디. 처음엔 외면하고 무시하던 로나도 조금씩 그를 돕기 시작한다. 벨기에 국적을 원하는 러시아인과 또 다른 위장결혼을 하려는 로나. 조직에서는 클로디를 죽일 계획을 세우고, 로나는 다른 방법으로 그와 헤어지기 위해 애쓴다.

광고문구에는 다르덴 형제의 첫번째 러브스토리라고 하던데, 전작들을 보지 못해 모르겠으나, 이 영화를 러브스토리라기 보다는 최소한의 양심을 가진 한 모질지 않은 사람의 인간애를 그린 영화로 보았다. 비록 돈으로 대가를 치루긴 했지만, 자기를 구해주었고 자기에게 의존해온 사람을 지켜주고 싶어한 사람의 이야기. 결국 자신때문에 희생되고 만 한 사람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괴로워하는 사람의 이야기. 

영화는 시종일관 조용한 분위기로 흘러가지만, 컷과 컷 사이에 숨겨진 이야기들에 숨막히게 되는 부분이 많았다. 특히 클로디의 갑작스러운 부재를 알게 되는 부분. 바로 전, 푸른 자전거를 타고 힘차게 달려가는 클로디와 가장 환히 웃는 모습의 로나의 장면이 지나갔기 때문에 갑자기 튀어나오는 '유가족'이라는 자막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여러번 깜빡거릴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유품을 챙기고, 그의 가족을 찾아가 돈을 건네었다가 거부당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그녀는 자기가 클로디의 유일한 가족이었음을 알게 되진 않았을까. 그래서 그가 남기고 간 것을 (남기고 갔다고 생각한 것이겠지만) 그리 소중하게 지키려고 애쓴 것은 아닐지.

눈물겨운 로나의 선택에 부디 축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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