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애호가적 생활

밀란 쿤데라의 책 두 권 [농담], [향수]

Zigeuner 2009. 2. 15. 17:17

1월에 밀란 쿤데라의 책을 두권 읽었었는데, 이제사 간략하게 메모해둔다. 두 소설 모두 공산주의가 몰락한 체코를 다루고 있는데, 등장인물이 체코에 계속 머무르고 있던 사람들 / 체코 밖으로 떠나간 사람들이라는 것이 다르다. 예전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읽을때도 어렵게 어렵게 읽었던 것 같은데, 이번에도 마찬가지. 체코의 배경을 알면 좋고 몰라도 크게 장애가 되지는 않을 것 같은데도 쉽게는 안 읽힌다. 시대에 배신당하고 역사에 농락되는 인물들의 좌절 같은 것. 이해는 가지만 공감은 안 가는 그런 것. 아직은 말이지.

이런 허영에 찬 말들 속에서 나는 내가 예전에 알았던 제마넥을 다시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의 내용은 나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제마넥은 예전의 태도를 근본적으로 버린 것 같아 보였고, 만일 내가 현재 그의 주위에 살고 있다면, 원하든 원하지 않다느그의 편에 서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것이야 말로 끔찍한 일이었고, 정말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물론 그런 입장의 변화는 그리 대단할 것도 없는 것이었으며, 오히려 그러한 변화를 겪는 사람들이 많았고 또 사회 전체가 점진적으로 그런 변화를 경험하고 있었다. 그러나 제마넥에게서만은 나는 그런 입장의 변화를 예상하지 않았다. 내 기억속에서 그는 마지막 보았던 모습으로 화석화되어 있었고, 지금 나는 그가 예전에 내가 알았던 사람이 아닌 다른 모습의 사람이 될 수 없다고 격분하여 주장하고 있는 것이었다.
...(중략)...
나의 공포는 거기에서 온다. 이제 제마넥은 언제든 자신이 변했음을 (게다가 그는 방금 의심스러우리만치 기민하게 이 점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선언할 수 있고, 내게 용서를 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게 끔찍하게 느껴지는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무어라 말할 것인가? 무어라 대답할 것인가? 그와 화해할 수 없다는 것을 그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화해한다면 나의 내적 균형이 일시에 깨져버리리라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러면 내 내면의 저울의 한쪽이 단번에 공중으로 날아가 버리리라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를 향한 나의 증오가 내 젊은 날에 닥친 고통의 무게와 평형을 맞추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가 이런 고통을 초래한 악의 화신이라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나는 그를 반드시 증오해야만 한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농담],p.372~373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를 하는 것, 모든 나라들은 이러한 희생의 유혹을 알고 있었다. 체코인들의 적이었던 독일인들과 러시아인들도 그것을 알고 잇었다. 그러나 그들은 대민족이다. 그들의 애국심은 다르다. 그들은 그들의 영광, 그들의 중요성, 그들의 보편적 사명에 열광한다. 체코인들이 조국을 사랑했던 것은 조국이 영광스러워서가 아니라 알려져 있기 않았기 때문이다. 조국이 크기 때문이 아니라 작고 끊임없이 위험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애국심은 조국에 대한 커다란 연민이다. 덴마크 인들도 이와 유사하다. 조제프가 이 작은 나라를 망명지로 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향수],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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