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애호가적 생활

바벨

Zigeuner 2007. 3. 21.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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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보고 싶었다기 보다는 점심 약속과 저녁 약속 사이에 할 일이 없었기때문에 킬링 타임용으로 보게 되었다. 물론, 바벨과 같은 영화는 킬링 타임용으로는 매우 부적절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시간이 맞는게 얘밖에 없어서.

바벨은 그 제목에서부터 아주 강하게 소통부재의 문제를 소재로 하고 있음을 내비치는데, 영화를 보기 전에 예상했던 대로 아주 갑갑한 심정이 되어버렸다. 미국/멕시코/모로코/일본의 네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하나로 연결되는 그 이야기 속에는 정말 복장터지는 상황이 가득하다.

신은 하늘에 도전하여 바벨탑을 쌓는 인간을 벌하고자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혼돈과 단절을 만들었다. 사실 혼돈과 단절의 원인이 비단 언어의 차이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갑갑했던 부분은 앰뷸런스를 애타게 찾는 미국인 부부에게 외교적인 문제를 내세우며 조금만 기다리라고 말하는 부분이었는데, 같은 언어를 사용해도 이같이 소통은 쉽게 단절된다. 이념이나 명분, 혹은 이기심과 욕심, 차이와 차별 등등의 많은 요소들에 의해. 도대체 이 단절은 어떻게 해소가 될 수 있는 걸까. 문제점을 드러내고 설명하는 방식과는 달리, 그 해결책이란 이성적으로 제시하기엔 설명이 모호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인 것 같다.

일본 에피소드에서 흐르던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이 반가웠다. 브래드 피트의 자글자글한 주름이 낯설었고, 키쿠치 린코가 발가벗은 채 서있던 마천루를 포함한 일본의 야경이 너무 차가운 느낌이었던 기억이 난다. 키쿠치 린코가 형사에게 건내준 쪽지의 내용이 궁금하구나.

20070307 @ 메가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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