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애호가적 생활

나는 가만한 당신 덕분에 숨을 쉰다

Zigeuner 2016. 7. 2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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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한 당신 - 10점
최윤필 지음/마음산책


날마다 시끄러움의 연속이다. 무관심한 이들에게는 들리지 않는 소음들이 존재한다. 간혹 띄워보는 트윗창에는 메갈 떼문에 무서워서 못살겠다는 사람들이 있고, 현실 세계에는 묻지마 폭행과 성폭행과 성추행에 끊임없이 노출되어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소리없는 공포의 현장에서 그나마 평탄하게 공포를 덜 느끼며 살아온 사람이다. 이게 웬 천행인가 싶다가, 생각을 고쳐먹는다. 이건 하늘이 주는 행운이 아니라 나보다 앞서 살았던 혹은 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피와 눈물로 길을 닦아주었기에 찾아온 행운이었다고. 비록 나는 그들을 모르지만 말이다.


<가만한 당신>은 그렇게 숨은 노력의 주인공들을 무대 위에 세우는 책이다. 2014년부터 지금까지 매주 한국일보 지면을 채웠던 부고기사 중 일부를 실은 책인데, 가만한 당신을 소개하는 책답게 문체가 조곤조곤하다. 나는 이 조곤조곤한 글이 여러 사람에게 읽혔으면 좋겠다.


트윗이나 페북으로 한국일보의 이 꼭지 '가만한 당신'을 늘 홍보해주었던 김명남 번역가 덕에 출간 이전에 읽었던 글들도 더러 있었다. 그 중에 가장 인상적인 글이 책에서 제일 첫 글로 소개된 것을 보고 조금 놀랐다. 콩고의 마마 레베카 마시카 카추바. 그녀를 시작으로 인권운동, 페미니즘, 장애인권, 반전 운동, 수형자 인권, 존엄사 운동 등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우리에게는 덜 알려져있어도 각자의 분야에서 치열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인만큼 전반적으로 묵직하지만 웃음이 빙그레 지어지는 글들도 적지 않다.


책을 펼치면 판권란 바로 옆, 최윤필 기자의 머릿글 보다 먼저 등장하는 문장이 하나 있다. 세번째 글로 소개될 스텔라 영이 기고했던 칼럼 속 한 문장. "나는 이 세상에 잘 살려고 왔지, 오래 살려고 온 게 아니야." (I'm here for a good time not a long time.) 나는 이 세상에 왜 왔을까, 잘 사는 건 무얼까. 어느새 잊힌, 답을 얻지 못한 해묵은 고민이 고개를 든다.


다음은 관련 링크.


한국일보 가만한 당신 http://www.hankookilbo.com/isl.aspx?c=124&cn=%ea%b0%80%eb%a7%8c%ed%95%9c+%eb%8b%b9%ec%8b%a0


IZE 기사

최윤필 기자│① “‘가만한 당신’은 넌지시 말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최윤필 기자│② “세상이 좀 나아져야 내 멋대로 살 수 있을 것 같다”


위 인터뷰에서 마음에 들었던 부분

제이 애덤스(1961~2014. 미국의 스케이트 보더)처럼 성공담이나 감동적인 인간승리와는 거리가 먼 사람의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꼭 위대한 삶이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윤필
: 내가 못된 성질이 있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그 멋대로 살던 사람이 만년에 스포츠용품 회사 후원을 받았다거나 하는 얘기를 쓸 때 좀 통쾌하기도 했다. 위인전처럼 쓰지 않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다. 아무리 멋있는 사람도 들여다보면 적당히 ‘찌질한’ 데가 있지 않나. 그런데 그 찌질함이 절대 조롱받지 않아야 된다고도 생각한다. 물론 가끔, 의도하지 않은 반전이 있을 때 그 내용을 빼고 싶은 순간도 있다. ‘이거 그림이 예쁘게 가고 있는데 먹물이 튀네?’ 싶은 기분, 이 사람의 일관되지 않은 삶을 내가 어떻게 해명해야 하지? 그럴 때 골머리를 썩고, 솔직히 말하면 뺀 게 있을 수도 있는데 가급적이면 빼지 않고 쓰려고 한다. 그리고 그게 더 좋다.


사람이 살면서 부딪히게 되는 수많은 딜레마가 있는데, 한국은 그것을 점점 지우려 하는 사회인 것 같다.


최윤필
: 딜레마라는 걸 아예 모르게, 생각하지 않게 해버리는 것 같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괜히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있는 삶을 긍정하자고, 다들 똑같은 놈들인데 괜히 위선 떨지 말라고 하다 보면 정말 거꾸로 가버리게 된다. 하지만 그 딜레마들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개입할 수 있는 장을 조금씩 넓혀 나가도록 노력하고, 스스로 나서지는 못하더라도 그런 장이 만들어졌을 때 함께하려고 노력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사람들이 조롱의 의미로 ‘트위터 세상’이라는 말을 하기도 하지만, 그나마도 없던 시절에 비하면 낫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에너지들이 언제까지나 안에만 갇혀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어떨 때는 절망하다가도 그런 생각을 할 때는 좀 낙관적이 되기도 한다.


그건 역설적으로 지금 많은 죄책감을 느끼며 살고 있다는 얘기일 것 같다.


최윤필
: 죄책감 없는 삶이란 건 없을 거다. 책의 자기소개에 “국적·지역·성·젠더·학력 차별의 양지에서 살았다”고 쓴 것처럼, 나는 남성중심사회에서 남자로 태어나 사는 혜택을 비롯해 차별의 갈림길마다 늘 운 좋게 상위에 놓인 삶을 살아왔다. 그 속에서 나는 떳떳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를테면 여성들이 밤에 택시를 탔을 때 느끼는 현실적 차원에서의 공포, 일상에서 가해지는 시선 폭력에 대해 느끼는 분노를 내가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 것에 대한 고민을 한다. 그동안 노력 없이 누리고 산 것들이 있고, 내 죄책감은 아마 거기서 비롯되는 듯하다. 그래서 어쨌든 세상이 좀 나아져야 내 멋대로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꿈이 있다.


(2016.8.24) 채널예스 인터뷰 추가

최윤필 "좋아하는 사람에게 소개하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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